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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기유학 어디까지 왔나···매일 초·중·고 100명꼴 해외로 '엑소더스'
9/11/2007
 

▶한국에서는 조기유학과 관련한 행사가 열리기만 하면 문전 성시를 이룬다. 사진은 서울서 열렸던 조기유학 박람회에 몰려든 인파들.

탈북자와 가야금. 얼마 전까지 '강남 엄마' 사이에 두 단어는 외국 보딩스쿨 (기숙학교)로 가는 키워드로 통했다. 탈북자에게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가야금 같은 고전악기의 연주활동은 외국 입학사정관의 눈을 사로잡는 도구였다. 그러나 이젠 옛말이 됐다. 한국 유학생이 너무 늘어난 탓이다.

정해경(21.여)씨는 고교 1학년 때인 2002년 9월 미국 캔자스주의 비숍 시베리 아카데미라는 사립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예부터 캔자스주는 한국인에겐 그다지 인기가 있지 않았다.

이 학교의 정원은 200명이었는데 그가 첫 외국인 학생이었다. 그러나 정씨가 12학년(한국의 고3)이 된 2005년 이 학교의 외국인 학생은 12명으로 늘었다. 이 중 한국인이 7명이었다.

서민층까지 유학 가세

호주 시드니의 한 고교에 재학 중인 조기유학생 C군은 "학교에 얼마 전부터 '코리안 데이'(한국인의 날)가 생겼다"고 전했다. 이 학교에는 한국인만 100명 넘게 재학 중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조기유학은 초.중.고교 학생이 외국 교육기관에서 6개월 이상 공부하는 경우를 이른다.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외국 대학에 입학하는 일반유학과는 구분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조기유학생은 1996년 3573명. 이때부터 한국에는 조기유학 열풍이 만들어낸 부산물로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등장했다.

하지만 조기유학생은 2000년까지만 해도 매년 줄어드는 추세였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 있던 98년에는 1500명 정도만 출국했다. 하지만 가장 최근 통계인 2005년엔 사정이 달라졌다.

조기유학생은 이 해에만 2만400명으로 늘어났다. 10년 전보다 5배 98년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불어난 것이다.

조기유학생 통계에는 부모가 해외로 파견 갈 때 따라가는 자녀나 이민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 이민을 간 학생이나 해외 파견자 자녀는 매년 1만5000명 안팎.

이들을 포함하면 조기유학생들은 한 해 3만5000명선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매일 100명꼴로 유학길에 오르는 셈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우아한 세계'의 주인공 강인구(송강호 분)는 조폭이다. 그가 주먹을 휘두르는 이유는 캐나다로 조기유학을 간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기러기 아빠 대열에 조폭까지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현실의 반영일까 지나친 과장일까.

"택시를 타고 가는데 기사가 '딸을 필리핀에 유학 보냈더니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코암유학원 이성재 원장)

한때 조기유학은 부유층의 특권으로 간주됐다. 실제로 광복 이후부터 90년대 초까지는 재벌 2세나 국가 유학시험을 통과한 학생 등이 대부분이었다.

90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획일화된 국내 교육시스템이 싫어 무작정 외국으로 나가기 시작한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홍정욱 헤럴드 미디어 사장이 93년 미국 조기유학 경험을 담은 '7막 7장'을 펴내면서 조기유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외환위기 이후 서민층이 조기유학 대열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생존경쟁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부모들이 자식의 영어실력을 키우기 위해 조기유학을 선택했다. 이 무렵 외국어고에 국제반이 생기면서 조기유학 붐을 일으켰다. 2000년대 들어 공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에 사교육이 번창하면서 조기유학은'필수코스'가 되다시피 했다. 최근에는 조기유학-국내 특목고-해외대학을 오가는 '연어족'이 늘고 있다. 하버드 2학년생 김현호(19)군은 아버지를 따라 중학교는 이집트 국제학교를 다녔으나 정작 고등학교는 민사고를 나왔다. 국내 특목고를 가기 위해 초등학교 때 단기유학을 떠났다가 특목고로 돌아온 뒤 다시 외국으로 나간 것이다. 조기유학생들이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서 인턴십을 하거나 팀을 짜 에세이 과외를 받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게 됐다.

90년대, 중>고>초···2000년대, 초>고>중

유학생의 연령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다. 90년대만 해도 조기유학생의 주력부대는 중고생이었다. 초등학생이 차지하는 비율(96년 9%)이 가장 낮았다. 그러나 2000년부터 조기유학생 가운데 중학생의 비율이 고교생보다 커지더니 2002년부터는 어린이들로 주력부대가 바뀌었다. 초등학생 비율은 2002년 34% 2003년 38% 2004년 38% 2005년 40%까지 치솟은 상태다. 한때 대학진학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이 출국한다고 해서 '도피성 유학'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으나 이제는 사라졌다.

'어린이 유학생'들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고교 때 영국 유학을 가 런던대에 재학 중인 이지현(21.여)씨는 "사춘기에 유학을 가면 방황을 많이 하기 때문에 차라리 아주 어릴 때 가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유학을 떠나 미국 하포드 크리스천 스쿨(사립)에 재학 중인 심치규(18)군도 "성인이 되고 나서 외국인을 만나면 거부감이 많지만 어린 나이에 외국어와 문화를 습득하게 되면 거부감이 훨씬 덜 생긴다"고 말했다. 반면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둔 김영숙(40.여서울 강남구 일원동)씨는 "부모 없이 몇 년 동안 외국에 보내는 게 아이의 인성교육에 좋을 것 같지 않다"고 부정적 의견을 나타냈다.

절반이 미.중으로 유학

조기유학생의 출신지역은 서울.경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두 지역 출신이 60%가 넘는다. 나머지 지역 가운데는 부산.인천 등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가장 선호하는 나라는 역시 미국. 2005년 34%를 비롯해 매년 전체 유학생의 30% 이상이 몰리고 있다. 캐나다.뉴질랜드.호주 등의 영어권 국가도 많이 찾는다. 요즘에는 싱가포르나 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들로도 많이 간다.

중국(2위)의 급부상도 두드러진다. 2005년 조기유학생의 18%가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국제학교에 유학 중인 오준원군은 "중국이 성장하고 있어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중.고생 두 자녀를 중국에 유학 보낸 이정숙(41.여.경기도 용인시)씨는 "아이들이 그곳에서 대학을 마치고 나서도 중국에 있겠다면 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보딩스쿨 입학 점점 어려워져

워낙 지원자가 몰리다 보니 미국 명문 보딩스쿨(기숙학교) 입학은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중앙 에듀라인 장영진 유학팀장은 "미국은 학교별로 외국인 학생 수를 제한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 희망자가 급증하는 바람에 랭킹 100위 정도 되는 보딩스쿨도 이젠 합격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서울어학원 박영준 원장도 "톱20 수준의 보딩스쿨에는 한국인이 200명 정도 지원하는데 4명 정도만 합격한다"며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고 전했다. 조기유학생이 늘어나다 보니 외화 유출도 만만찮다. 한국은행 무역수지 통계에 따르면 유학"연수 등으로 인한 해외 송금액은 2005년 3억5000만 달러(약 3300억원)에 이른다.

반면 한국으로 외국인이 들어와 얻는 유학수입은 120만 달러(약 11억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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