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대북한 정책은 [상생과 공영] (과거 정권 보다 구체성 명확 북한은 노 코멘트 한다)
<발행인 칼럼>
지난 2월 출발한 [이 명박 정부]는 대북정책 명칭을 7월 31일 경 확정발표 했다. 이 같은 공식명칭 확정발표 주무 부처는 통일부.
통일부는 지난 3월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할 때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상생과 공존의 남북관계 발전계획]이라고 발표했고, 최근 통일부는 이를 최종 확정했다고.
여기서, 통일부는 "상생 공영의 대북정책은 김 대중의 [화해협력](소위 햇볕정책)대북정책과 노 무현의 [평화번영 정책]을 뛰어넘는 비전과 목표를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과거 정부들은 적대관계를 거쳐 상생공영의 단계로 간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다시 "비핵개방 3,000의 실천을 통해 남북경제 공동체 형성을 실현하고, 북핵 진전에 따라 남북경제 협력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의지를 천명. .............................................................................................................................
위와 같은 통일부의 대북정책 확정에 대해 미주통일신문은 다음과 같은 논평을 한다.
1. 먼저, 남한의 [상생과 공영]의 대상인 북한은 지난 1960년 대 부터 1970년 대 까지 대남통일정책을 [고려연방제]에서 [고려민주연방제]를 확정 했고, 2000년 6월15일 [고려님주연방제]가 사회주의 색채가 짙어(김 대중-김 용순 팀이 짜고) 이를 '낮은 단계 연방제'라고 사기를 쳤다.
2. 남한의 경우는 대체로 김 대중, 노 무현 정부 당시의 대북정책 명칭들이 있었으나, 기실은 박 정희 대통령, 전 두환 대통령, 그 후 노 태우 대통령도 각각 대북정책들을 내 놓고 흥정을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그 때는 남북한이 동-서 냉전시대의 영향을 직접 받아 남북한 간의 대화가 불가능했고 고작 노 태우 대통령이 집권 후 김 대중의 햇볕정책의 기초를 제공하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안]을 공식 발표(당시 이 홍구 통일원 장관)했고 뒤이어 [7.7 선언] 등을 통해 대북 공격형 접근전략을(중국-러시아를 이용, 소위 우회로를 통한 대북정책 추진) 시도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노 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 1987년 12월 소위 북한의 KAL기 공중폭파 사건을 참고하여야 한다. 이는 미주통일신문의 단독 판단이다. 그 때 북한은 노 태우 당선을 위해 긴장조성용으로 북한은 노 태우 캠프에 테러 감행 사실을 통보 하고(추론), 대선 직전에 테러리스트 김 현희 등을 투입, KAL기를 공중폭파 한데 대해 노 태우는 대통령 당선 직후 부터 북한에 보상 차원 등에서 최초의 공식 대북 퍼 주기를 시작했다. 사실이 아닌가 ? (이에 대한 증거, 증인은 당시 박 철언 이다)
이 때 미주통일신문은 전임 정권의 대북정책을 노 태우가 180도로 변경할 이유가 없었는데, 1989년전후 부터 노 태우가 대통령이 된 후 (물론 당시 소련 해체 등 통독 등 영향이 있었지만) 최초의 대북 포용정책이 추진될 때 미주통일신문은 "시기상조 다 ! 북한에서 오다가 왔나 ? 우리가 일방적으로 화해협력 추진은 실패한다 ! ..."라고 시비를 걸자 미주통일신문 정부지원금이 스탑되었다.
3. 어쨌든, 노 태우 대통령이 최초로 시도한 대북 퍼주기는 노 태우 임기 말에 북한에서 [연방제 수용]을 하겠다면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통보하자, 노 태우 팀은 5년 공든 탑이 무너졌고, 뒤이어 김 영삼 대통령은 엄격한 대북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진전이 없었다.
4. 그 후, 김 대중의 등장에 따라 북한의 정상회담 불변의 전제조건인 [연방제] 수용요구에 관련, 김 대중은 사기를 쳤다. 즉, [고려민주연방제]의 색채가 붉어 이를 낮은 색깔로 만드는 소위 [낮은 단계의 연방제]-[느슨한 남한의 연합제]가 공통성이 있다고 사기를 쳤던 것.
이 때 북한은 최소한 10억 달러 이상 +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입금, 수용한 김 대중을 북한으로 불렀다. 그러나, 2000년, 그후 2008년 8월 1일 오늘까지 그 놈의 두 연방-연합제는 1단계 진입도 못하는 착수 미수에 그쳤다.
5. 이럼에도 이 명박 정부가 "북한의 버릇을 고치겠다.... 엄격한 상호주의, 전략적 실용주의"운은 하다가 '역적'소리를 들은 직 후 금강산 테러가 발생했다.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테러 후 오늘 2008년 8월 1일, 불과 테러 사건 후 20일만에 정부는 [상생과 공영]이라는 대북 당근을 던졌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묻고 싶은 충동이다.
결론.
남한이 군사행동을 통한 무력통일이 원칙이 아니라면 위와 같은 한민족 공동체- 화해협력- 평화정책안이 기본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이러한 당근 풀랜들이 결과물이 없더라도 남한은 북한의 극적 변화를 기대하면서 이 같은 미소, 짝사랑 전략을 피할 수 없다는 것.
이 명박 대통령은, 금강산 테러 등 위협을 느끼고 [대북 전면 대화]를 제의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엄격한 상호주의 전략이 후퇴했고, 북한은 그 같은 이 명박 대통령의 후퇴에 관계없이 금강산 테러를 통해 북한은 이 명박 대통령의 버릇을 고친다고 액션을 취했다.
이제와서, 금강산 테러에 놀라(상생 공영 대북정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테러사건 후 20일 만에 이러한 대북정책을 발표했다는 것은, 이 명박 정부도 실책을 면할 수 없다는 결론.
단, 이 명박 대통령이 김 대중-노 무현 이상의 대북 퍼주기를 하면 남북정상회담은 기본이고 알맹이 없는 남북화해 인적 물적 교류가 재연된다.
미주통일신문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대북정책 발표시기를 8. 15 혹은 내년 1월 1일 신년사 등을 겸(兼)했어야 했다는 것. 이러한 실책, 판단미스는 [통일부]가 사고를 친다는 사실. 즉, 통일부의 한건주의 발상에 북한이 우리를 과소평가 한다는 것.
[대북 상생 공영의 정책]을 내년에 발표하면 북한이 붕괴하나 ? 북한이 남침을 하나 ? 무엇이 그렇게도 급(急)한가 ? 그래서, 한국의 땅 독도가 사이버상에서 일본에 뺏겼다는 것이다.
* 북한체제가 붕괴하지 않는 한 우리의 어떠한 대북정책도 성공하지 못해 *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면 효과가 없지 않으나 북한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 * 상생공영 이상의 절묘한 대안 없으나 북한은 체제위험적인 남한의 접근을 차단이 문제 * 북한은 남한의 위협적이고 요란스런 상생 공영은 원치 않고 조용히 퍼주기만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