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비밀
  
 
   NORTH KOREA NEWS  
김 정일 위원장 생일 나흘 전에 (미주통일신문 미제국주의 본토에서 신문창간....) 2/10/2008
(2월 16일 김 정일 위원장 생일 나흘 전에 미제국주의 나라 본토에서 신문창간을 했던 미주통일신문.....1983년 초 부터 로동신문, 민주조선, 통일일보 등 신문을 무더기 우송을 해 주어 나는 이를 접수한 적이 있습네다. 어쨌든, 나는 여러분들 때문에....미국제 고난의 행군을 했수다레)    


<  사  설  >

2월 11일은 미주통일신문 창간 기념일이다. 미주통일신문은 지난 1982년 2월 11일, 당시 남북한 냉전시대에 미국에서, 사실은 세계 전역에 있는 해외 동포사회에서 최초로 창간된 반공신문이었다. 당시 창간호 제호는 [재미 한국인].

창간 1년 후, 1983년 12월이었나. 당시 대한항공기가 소련 영공 캄차카반도에 진입했다는 이유로 전투기 수호기가 칼기를 공격, 칼기가 격추되었을 때, 신문 제호를 오늘의 [미주통일신문]으로 긴급 변경했다. 당시 미주통일신문은 초기 편집방향과는 일부 다르게 LA 교민사회의 심층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북한문제]가 아주 심각한 사태 진행을 파악, 편집방향이 반공이념 강화, 교민보호에 나서게 되었다. 해서, 1983년 부터는 노골적으로

북한체제 동향-동태 탐문, 분석, 취재,

남북한-미주지역 이산가족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산가족들이 미국-한국 정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극비 북한방문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일본 공산당 소속 [조선인 총련맹](이하 조총련) 팀들 까지 LA에 침투, 암약 중이었고,(미주통일신문 대표를 살해하려는 지령이 있었고.... 자동차 폭파사고도 있었고, 권총으로 위협받은 사실도 있었고, 사생활 까지 협박 등을 당했다)

친북 세력 및 일본 조총련까지 한인타운 중심가 올림픽가 가정 집에서 아지트로 활동하고 있음이 적발되었고,

LA 지역 각 대학에도 북한 프락치가 침투, 좌익 교수들이 한인 학생들을 포섭, 북한을 데려가는 등 사실이 확인되었고,

LA 침투 북한 추종세력들이 영주권 없는 교민 등을 포섭, 협박, 자금제공 후 대동 월북을 하는 사실 확인,

특히 종교계, 기독교-불교계-언론계, 하숙집에 까지 친북한 세력들이 위장 침투 혹은 이산가족을 볼모로 하여 협박 공갈을 하고 있었으며, 하숙집에서는 북한 프락치들이 은거, 하숙생-유학생들을 포섭하고 있었고, 심지어 하숙집 안에서 북한 찬양 노래를 부르고, 각종 영화 비디오 테이프가 난무 했고, 올림픽가 우체국 주인까지 북한 찬양 비디오 테이프를 교민들에게 '선전'하고 있었으며,


북한방문 중 미인계에 걸린 목사들 까지 북한 공작원들로 부터 각종 협박을 받으며(코가 끼어) 친북 행사에 참가했고, 북한 송금을 하고 있음이 드러났고,

일반 직장에 까지 친북한 교민들이 늘어 났고,

룸 살롱 등 야간업소에 친북한 여자들이 활동했으며,

일본 조총련 등이 LA에 와서 결혼 상담소 등 교민 여자들에게 접근 3만 달러 정도를 주고 미국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례가 확인되었고,

친북한계 학자, 종교인들이 수시로 북한의 연방제 통일 등등 대외 공작을 LA서 세미나를 했으며,

북한 로동신문, 통일신보, 미주조선, 등대화보 등 무수한 종이 신문들이 LA 교민들에게 배달되었고...................

한국에서는 버마 아웅산 테러 등등 북한의 테러가 무수히 자행되어 남북한은 대결 불신의 경쟁관계가 되어 있었다.


이 무렵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LA에 파견된 요원들의 북한정보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오늘 이 같은 소모적 남북대화를 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된다.


당시 본사는, 북한 관련 자료들을 수집, 분석한 결과 한국에 있을 때 배웠던 북한문제들과는 상이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는데서 미주통일신문이 지난 27년간 생고생을 하는 단초가 되었다. 즉, 북한에서 발행한 각종 선전 인쇄 매체물에서(잡지 신문 등)


1.  북한은 아주 강력한 체제로 운영 중이며,

2.  김 일성-김 정일은 건강하며,

3.  북한체제는 아주 강력하고, 군사력이 상당하며, 테러교육을 하고 있으며,

4.  특히 주민통제 수법이 우수하여 내부 쿠데타 등 발생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으며,

4.  1985년 전후 부터 김 정일의 후계자 수업이 확인 되었으며, 남북한 정치통합은 불가능한 것으로 감지 되었으며,("북한체제 인정하라"는 사설까지 썼다. 북한자금을 받지도 않고 언론철학 ?에서... 썼다. 그 때문에 오해를 받았다)

5.  특히 북한의 대남통일전략들이 [무력-평화] 2대 전략전술에 따라 화전양면 성향이 포착되었고,  북한이 남한 체제에 흡수하지 않겠다는 체제의 특수성을 확인했고, 통일은 30년 후.... 분단역사 처럼 장기화 된다고 판단, 보도를 하기 시작.



이로써, 당시 정부의 미주통일신문 지원책이 수립되었으나, 미주통일신문이 안기부와의 언약 등 약속을 배반하고, 안기부 요원들을 공격, 언론보도로 인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을 초래한다. 그것은 당시 기자의 사회경험 부족 등 언론사명 등 대북전술 언론을 펴던 중 안기부 LA파견자들이 미주통일신문에 대한(보장) 자신감 상실, 가치개념 혼란 등으로 인해 각종 충돌이 발생 했었다.


그 후, 8년 만에 동서 냉전 해체, 재편으로 인하여 미주통일신문은 반공언론 사명에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1989년 부터 노 태우 정부는 북한을 주적에서 통일의 동반자로 인식, 전략을 수정하고 있었다. 즉, [우회로-중국-를 통해서 북한접근]정책들이 입안, 추진 시작.

이로 인해 미주통일신문은 정부의 대북정책에 걸림돌이 되었다. 전임 대통령의 재가가 있었기 때문에, 노 태우 정부 당국은 미주통일신문에게 [북한 접근]을 요청했다. 그러나, 기자는 정면에서 거절했다. "아직은 북한과 접촉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맏형 역할을 할 수 없다. 북한체제는 아주 견고하다..."고 설명했으나 먹혀들어 가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북한계 목사 부인이 기자를 회유, 납치, 살해하려다가 실패, 안기부 파견자들이 달려오고.... 반면, 신문경영 자금이 없어서.... 거지 생활 같은 생활을 했다. 명색이 반공언론을 하고, 교민사회를 보호하자는 언론이 교민들을 상대로 민폐를 끼칠 수 없었다. 다른 편법 행위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범죄 등 부도덕한 행위를 한다면 반공언론을 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눈물이 나지도 않는다.

시간마다 들어오는 북한 신정보.... 심지어 신 상옥-최 은희 위장탈출 등등등등.... 사건들이 터지는데도 신문 제작비가 없어서..... 인쇄비 외상.. 수표 부도.... 사채.... 자동차도 없이 버스, 택시를 타고 다니며.... 한국의 친지들은 모두 겁을 먹고 전화통화도 안되고......)


계 속

 

 
Today:
Total:
 
   NORTH KOREA NEWS  |  SOUTH KOREA NEWS  |  U.S. NEWS  |  NEWS IN ENGLISH  |  커뮤니티  |  L.A.생활  |  전문가 상담  |  Contact Us  |  About Us
Copy Right (c)  1999-2010  www.unitypress.com  Info@unitypress.com            web design by Stouch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