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일 국방위원장, 아래 기사 읽고.... 기분 좋습네까 ? ("특종비를 미주통일신문에 보내라"고 지시를 하라우요 )
1/5/2007
영화인 77세의 [최 은희]여사, 자서전 출간 (김 정일에 의해 북한 위장탈출 사실 고해성사 해야 자서전 진실.... )
(최 은희 여사의 자서전 출간, 축하.....그러나 자서전에서 중요한 북한 위장탈출, 김 정일 배려에 의한 미국 행 사실 등을 밝혀야 그 자서전은 100% 진실로 기록 돼. 맨 아래 기사는 미주통일신문의 1987년 2월 당시 위장탈출극 사실을 파악, 보도했던 헤드라인 뉴스) ..............................................................................................................................................................
최은희 77년 파란만장한 `여자인생` 풀 고백 [조인스] 중앙일보 인터넷 사이트
“남편 신상옥 감독과 후배 오수미의 외도, 납북과 재결합, 내 애증의 세월을 말한다” 영화보다 영화 같은 삶을 담아낸 『최은희의 고백』(랜덤하우스)의 출간 소식을 듣고 만난 최은희씨(77)는 ‘보수적 여성’에 속했다. “연구생(극단 단원)이던 시절, 유부남 선배들이 치근덕댈 때면 참기 힘들어 배우를 그만두고 싶었다”는 말을 했고, “배우가 안 됐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냐”는 물음에는 “일부종사하며 좋은 아내가 됐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운명의 파도는 배우 최은희를 많이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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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의 파란만장한 역사에는 두 차례 납북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예술인 신분으로 포로가 됐고, 두 번째 납북은 1978년 1월이었다. 당시 홍콩 여행 중이던 최은희가 바닷가를 보려고 항구에 정박 중인 보트에 탔다. 이때 보트 항해사가 시동을 걸더니 이런 뜻밖의 말을 했다. “최 선생, 지금 우리는 김일성 장군님의 품으로 갑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 땅으로 납치된 최은희를 남포항까지 나와 마중했다. 첫 대면한 김 위원장은 “최 선생 보기에 내가 어떻습니까. 난쟁이 똥자루 같지 않습네까”라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5년 뒤. 최은희는 김정일이 베푸는 연회장에서 뜻밖에도 신상옥 감독과 재회한다. 당시 신 감독이 납북된 것을 두고, 최은희를 만나기 위한 신 감독의 자진 월북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기자는 이런 해석을 내린 적이 있다. 어쨌거나 김정일 위원장은 최은희와 신 감독의 재회를 이뤄 준 ‘은인’이라는 것이다. 최씨는 북에서 만 8년을 지냈고, 신 감독과 재회한 후 3년 동안 초인적으로 영화 17편을 제작한 뒤 탈출했다.
북에서의 9년을 정리한다면요
아무리 힘들고 캄캄했어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북에서 최고 대접을 받았지만, 배고프고 자유가 없는 인민을 보면 가슴이 아팠죠. 영화광인 김 위원장이 우리를 납치한 것도 이해가 돼요. 탈출 이후 암살 지시가 있었다는 말이 돌았지만, 아마 김 위원장 역시 짧은 시간 많은 일을 해주고(3년 동안 17편의 영화를 제작했던) 큰 무대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기 위해 탈출한 것을 이해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나를 데려가 막 대했다면 인간 취급을 안 했을 텐데, ‘최 선생’이란 호칭으로 깍듯하게 대하고, 영화 팬으로서 내 영화를 인정해 준 부분은 고맙죠. 특히 신 감독과 재회하게 해준 ‘깜짝쇼’를 생각하면 ‘납치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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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고 망설였지만, 여자로서 치부까지 담았다”는 자서전을 출간한 최씨를 만나 배우 아닌 ‘여자’ 최은희의 일생을 들여다봤다. =====================================================================================
* 분단민족의 최대 비극 중의 하나 신 상옥-최 은희 부부의 북한 행, 위장탈출극
* 1978년 최 은희 씨의 피랍은 사실 그 후 신 상옥 씨는 자진 위장 월북
* 신 상옥의 아이를 낳은 오 수미가 하와이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배경이 위장 교통사고 추정(오 수미 사망 직전 신 상옥씨가 하와이에 있었다)
* 신 상옥 씨 위장피랍극은 당시 남 석훈 영화인(홍콩 거주, 현재 LA 지역에 거주)이 주선 한 것으로 파악
* 신-최 부부는 영화광 김 정일과 3년 계약(?), 북한영화 세계 무대 진출 약속 17편 극영화 제작, 성공
* 최 은희 씨의 피랍은 김 정일이가 아버지 김 일성의 애타는 '최 은희 영화사랑'을 만족 제공 위해 납치
* 신-최 부부의 북한탈출은 김 정일이와 짜고 탈출 위장극 연출 미국으로 빼 돌려 줘
* 신 -최의 미국 행은 '징기스칸'영화 제작, 김 일성 우상화 전략 수행 목적, 김 정일의 북한 사회개방 신호를 미국 정부에 알리기 위한 녹음기 전달 목적 병행
* 1987년 미국에 위장탈출, 도착한 후 88서울 올림픽 방해 발언 등등 의심스런 언동 포착한 미주통일신문이 LA에 온 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하면서 위장 탈출 사실을 5시간 만에 분석, 확인.보도, 특종 ..... 미국 CIA 요원들도 미주통일신문 기사에 탄복, "어떻게 알았나 ? " 찾아 와 확인 소동
(위 관련 내용은 다음 주 TV 방송에서 특집 28분 뉴스 쇼를 한다. 최 은희 부부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 문제는 우리들이 모두 알아야 할 비하인드 스토리. 이들 부부가 김 정일 위원장이 탈출을 가장하여 출국 시킨 사실을 김 정일 위원장이 직접 말한 사실(1989년 당시 김 정일을 만나고 온 LA 헐리우드에서 영화 제작하던 유 진오 고려대 전 총장의 친척이 LA에 와서 말했다.
그는 영화 제작을 상의하기 위하여 북한에 가서 김 정일을 만났더니.... 김 정일은 {..... 술에 취해... 나에게 말하기를 "신 상옥이... 내가 미국에 가도록 해 줬는데....나를 욕하고 있어.... 짜아식...." 이런 말을 했다}고. 이 말을 노 태우 정부 당시 로비스트 LA거주자 '한 상만'씨가 듣고 기자에게 제보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