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통일 후 북한여자와 결혼하겠다는 남자 있다면, 절대로 군인출신이나 여자 공무원 출신과는 하지 말기 바란다. 아랫도리가 공중변소가 된 창녀보다 더 더러운 여자들 뿐이니까 말이다. 안 그런 여자는 군인이나 공무원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공중변소 여자들이 요즘 유행어란 {통일 후 돈많고 배운거 많은 남조선 총각에게 시집갈래}란다.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찍어먹을 사탕가루부터 찾는다더니 북한*들이 그렇지 뭔가?]
주 : 북한의 신종 속담 - 여군들이나 군부대 주변 처녀들 젖은 다 염소젖통이다! (하도 남자군인들이나 당간부들이 주물러놓고 빨아놔서 염소젖통처럼 늘어지고 젖꼭지가 빠져서 나온 속담이다.)
* 위의 북한 여군도 반반하게 생긴게 훈장까지 타는 걸 보면, 진짜 공훈은 당간부의 섹스노리개 해주고 그 댓가로 타는 거나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저 여자도 벗겨놓고 보면 100% 염소젖통? 저걸 얼짱 여군이라고 좋아하는 골빈 남자들아. 얼짱치고 아래가 깨끗한 여자 하나도 없다는 건 남북한이 전혀 안 다르단다. 곁만 얼짱일뿐 저 여자, 실제론 성병까지 걸렸을지도 모르지. 북한엔 워낙 비위생적이고 성병을 치료하는 예방약이나 항생제가 없어서 무진장 성병 환자가 많거든?
지방 간부들의 성 접대 심각
67호 2007.04.23 505 일부 지방 간부들 사이에 비공식적인 성 접대가 관례처럼 굳어지고 있다. 중앙에서 검열을 내려오거나 주요 인사가 오면 “밥 먹고 술 마시고 여자 데리고 놀겠나?”고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간부들이 있다고 한다. 주로 예술계통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나 토대나 성분이 좋지 않은 집안의 딸들이 여기에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노래와 춤, 악기를 다루는 재능 있는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이런 접대 자리에 참가하게 되면 잠자리까지 요구받게 되는 것이 통상적이다. 토대나 성분이 나쁜 여성들은 평양에서 지방에 쫓겨난 집안의 딸들로 당국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된다. 일부 고약한 간부들에게 걸려 협박을 당하면 더 나쁜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할 수 없이 응하는 경우가 많다. 괜히 거절했다가 온 집안이 더 깊숙한 산골로 쫓겨 내려가거나 최악의 경우 집결소로 보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여성들 외에 꽃제비 여자 어린이들까지 성 접대에 일부 동원하는 경우가 있어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어린 여성과 관계를 맺어야 재운이나 관운이 붙는다는 속설에 어린아이를 찾는 간부들이 있기 때문이다. 꽃제비 구제소에서 얼굴 고운 여자 어린이들을 골라 목욕시키고 단장시켜 하루 수발을 들게 한다. 어린아이들이다보니 먹을 것이나 돈을 좀 주겠다고 하면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선다. 나이는 15-16세라 하더라도 영양부족으로 발육이 늦어 10-12세 안팎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다. 대체로 이런 수발을 드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15-16세이다.
관기(官妓)인가? 여군인가? [2007-05-09 ]
“어머니 당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군”
북한에서 딸자식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너 사람 버리는 군대엔 왜 가니?” 군복무기간 노동당에 입당하기 위해 부대 정치장교들의 성노리개가 되어야만 하는 북한 여군들의 기구한 운명을 두고 한 말이다.
북한 여성들이 군대에 가는 목적은 당에 입당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육체적 생명보다 정치적 생명을 더 귀중히 여기도록 교양 받아 그 정치적 생명의 징표인 당증을 메는 것이 군복무의 최대의 목표인 북한 군인들은 입당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한다.
북한군에서 군인들의 입당문제는 정치장교들의 소관이다. 즉 부대정치장교들의 펜 끝에서 군인들의 입당(入黨)문제가 결정 난다.
그래서 북한군의 실질적인 파워는 부대장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부대의 정치장교에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북한군에서 정치장교와 보위장교는 행정장교를 두고 ‘똥진 너구리’라고 얕잡아 본다.
정치장교들은 입당하려는 여군들의 심리를 이용해 그들을 자신의 성적만족을 채워주는 노리개로 삼는다. 말만 잘 들으면 입당시켜 준다는 달콤한 희유와 얼림에 속아 짐승처럼 달려드는 정치장교들에게 순진한 북한여군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자신을 겁탈하는 정치장교를 거부하는 순간부터 그들의 군 복무는 가시밭 인생이 되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할 수 없이 몸을 맡긴다. 정치장교의 요구를 거절한 여군은 입당은 물 건너갔음은 물론이고 음으로 양으로 가해지는 각종 압력과 제제로 제대되는 날까지 죄인처럼 지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치장교의 요구에 순응한 여군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정치장교를 만족시킨 대가로 그토록 바라던 입당도 할 수 있고 제대되는 날까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이 비밀 아닌 비밀을 잘 알고 있는 북한사람들은 여자가 군대 가서 입당하고 왔다면 “어머니 당에 몸과 마음 다 바쳤군”라고 하면서 비꼬아 말한다.
일본군이 식민지 여성들을 강제로 동원해 위안부로 삼았다면 ‘선군정치’의 주역인 북한군은 순진한 北처녀들을 입당이라는 올가미에 얽어 매놓고 현대판 관기(官妓)로 만들고 있다.
한민: 정경미의 돌격대생활 편지 2006.05.10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한민의 탈북자가 만나본 탈북자’ 순서입니다. 오늘은 함경북도에서 4년 동안 돌격대에 소속되어 일하다가 2004년에 남한으로 온 정경미씨가 남포도로건설 돌격대 함경북도여단에서 일하던 당시 중대와대대 지휘관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방송듣기 오디오 자료 전송받기 오늘도 돌격대 지휘관으로 수고 많으실 함경북도여단의 여러 지휘관들에게!
당신들이 이 편지를 듣노라면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겁니다.1997년 9월에 내가 남포고속도로 건설 돌격대 함경북도 여단에 소속되어 남포현지에 도착한 그날, 중대정치지도원이란 사람은 신입대원으로, 23세 처녀인 나에게 이런 말을 했죠.
“돌격대판에서 편하게 살려면 정치지도원에게 잘 보이는 것 외엔 없다는 걸 알어라” 라고 하면서 나에게 공사현장에 대한 무서운 공포감을 심어주던 그 첫 인상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고생문이 열렸구나!”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대원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마치 노예같다고 하며, 감옥에 있는 죄수들 보다 다를 것이 없다는 등 그는 나에게 작업현장에 나가면 저렇게 비참한 노동에 시달릴 것이고 중대정치지도원인 자신에게 몸을 바치면 자기의 권한으로 식당취사원 같은 쉬운 일감을 줄 수 있다고 나를 꼬드겼습니다.
그자의 검은 속셈을 뿌리치자 다음날부터 나에게는 중대에서 가장 힘든 일감이 차례졌죠. 철판으로 만든 질통을 등에 지고 그 속에 20kg 무게의 자갈과 버럭을 운반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정말로 죽을 힘 다해 일했죠.
밥을 먹으면 한 시간도 안 되어 배가 고팠습니다. 목욕도 1개월에 한 번씩 할 수 있었고 여성들은 밤마다 중대, 대대지휘관들에게 시달려 20대 초반에 임신하여 문제가 생기기도 했고 부인병에 걸려 고생하는 여성대원들이 그렇지 않은 애들보다 더 많았습니다. 죄를 진 사람도 아닌데 왜 이런 참혹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당시 우리 중대는 60명이였고 1개 소대에 20명씩 3개 소대로 나뉘어 있었으며 모두 함경북도에 집을 둔 사람들이였습니다. 여자는 중대에 15명이였으며 중대원 전체가 지방공장 노동자, 농민 출신들이었고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은 군 청년동맹 지도원 출신 들이였습니다.
작업장은 그야말로 끝이 안 보이는 인산인해였습니다. 한발자국 잘못 옮기면 서로 부딪칠 정도로 와글와글한 작업장에서 서로가 충성심을 표현하는 구호와 혁명가요를 목청껏 부르짖었고 여기저기에서 방송 선동차들이 경쟁적으로 방송을 하니 혼이 빠질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숙소는 모두 진흙으로 만든 토굴집인데 숙소내부 정면에는 김부자 초상화가 걸려있고 측면에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당은 청년들을 믿습니다!”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습니다. 나의 잠자리는 출입문 옆이어서 밤엔 너무 추워 온몸에 힘을 주고 겉옷까지 모두 입고 담요 한 장에 비닐 방막까지 덮고 자곤했습니다.
그리고 아침6시면 일어나 군대처럼 줄을 지어. 혁명가요를 부르며 작업장으로 가죠. 질통과 마대에 흙을 담아 등에 지고 몇 백명이 떼를 지어 고함치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지금도 앞에 보이는 것같고 지휘관 당신들이 매일같이 외치던 선동이 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낮에는 대원들을 노동에 내몰아 진을 빼도록 선동하고 밤에는 처녀대원들의 숙소에 들어가 그들을 피 눈물나게 하던 당신들의 더러운 모습은 그때 돌격대 지휘관들 속에서 일반현상이었죠. 여성대원들을 당연한 자기의 성노리개로 인식하는 북한돌격대 지휘관들에게 경고합니다. 순진하고 착한 젊은 애들을 돌격대라는 명분으로 끌어가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북한의 통치자들은 나라의 청년들을 아무런 보수도 없이 수 십년 간 잔인한 노동을 강요한데 대하여 대가를 치를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돌격대 중대지휘관 대대지휘관들은 노동에 시달리고 굶주림에 지쳐 병들어가는 20대초의 여성대원들을 입당시켜준다는 달콤한 꼬임수로 2~3년 동안 정신과 육체에 깊은 상처를 남겨주는 더러운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북한이란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돌격대란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당신들도 알 것입니다. 오죽하면 북한에서 처녀총각 선 볼 때 여자측이 돌격대경력이 있었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겠습니까! 돌격대생활하면 남자는 무지한 도적놈으로, 여자는 교양없이 몸 바친 여자로 된다는 두려움이 자식 키우는 부모들 속에서 없어지지 않고 있답니다.
앞으로 북한이 민주화 되는 그날, 수 백만 명의 돌격대원들이 당신들에게 입은 상처를 세상에 고발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장군님이 보내준 선물이라는 중국산 건설용 리어카들을 관상용으로 지휘부 앞에 진열해 두지만 말고 등짐 져서 잔등에 피 멍든 대원들이 사용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기막히게 현대적이라는 중국산 리어카는 여기 한국건설장에선 너무 낙후되어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보물처럼 교양용으로 놔두지만 말고 사용해야 합니다.
당의 부름 받고 돌격대노동판에 나갔다가 죽거나 장애인이 되는 불행은 철두철미 당신들 지휘관들의 죄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생필품과 식량공급이 없는 현실에서 대원들을 군대처럼 가두어 놓고 무보수노동을 시킨다는 그자체가 인권유린이며 범죄행위란 걸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무지한 돌격대 속에서도 가끔씩 인정 있는 존경할만한 지휘관들도 있습니다.
대원들은 자기 일생의 가장 꽃다운 시절에 3년간 돌격대 생활에서 만났던 사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좋은 사람으로 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