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 보 >
* 광주사태 유혈진압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고 당시 군부에서 저지른 만행 확인 중
* 탱크 장갑차 등 탈취 운전은 거의가 남파 북한 특수요원들이 전담했다고
* 박 정희 대통령 시해 후 당시 김 대중과 북한 측과의 내통 가능성 배제 못해
미주통일신문에서 계속 보도하고 있는 1980년 5월 광주 사태 당시 북한군의 침투사실 등에 대한 내용 중,
* 당시 장갑차-탱크-기관총-군용차 탈취 등 운전 및 사격은 주로 남파 북한 특수부대 요원들이 장악, 한국군과 대치 전쟁을 했으며, 당시 광주침투 븍한 특수요원의 표시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둘렀고
* 당시 임신부 태아를 죽이는 등 만행은 북한군이 하지 않고 거의가 당시 한국군에서 자행했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다. 1981년 부터 북한군 특구수대에 근무한 아무개 씨는 {내가 군관학교에 입학한 후 광주사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사진화보와 한 심리전 영화를 통해서 당시 상황을 알 수 있었는데 당시 한국군 특전사에서 임신부의 태아를 땅바닥에 던져 죽이는 장면과, 광주 시민들을 사살, 구타, 만행을 저지른 장면들을 보았다...} 또, 그는
* {당시 북한군 과 시위 주동자들은 마치 미군이 개입, 광주 사변을 확대시켰다고 선전했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당시 미군은 관련이 없었고, 북한에서 남파한 2개 대대병력(안내원 등 총 2천 여명으로 추산)이 민중봉기를 일으키려다가 당시 특전사의 화력 등이 너무 세 우리가 실패했다.
* 다시 강조하지만, 북한군이 광주사변(그는 광주사태 라는 표현을 하지 않으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광주사태 라고 정의한다.)에 참전했던 당시 북한군의 전투실제 경험을 북한군에선 현재까지 전술교범으로 활용하고 있다. 북한군부는 전쟁을 위한 교훈적 사건들을 정리하여 훈련교범으로 쓰고 있다} 고 밝혔다.
* 다시 그는 광주 사태 당시 작전지휘를 한 제 61 저격여단 대대장 이름이 (이 봉원-- 인민군 부총국장 까지 승진 후 숙청)으로 알고 있으나 (이 제원-- 당시 570 경보병 지도국 국장)인지 분명치 않다고 말했다. 이 봉원이가 아닌 이 제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기억을 더듬고 있다.
위 두 사람은 그 후 모두 숙청되었다. 이 인모 노인이 월북 한 후, "남조선에서 전향서를 쓴 군 간부들이 있다"는 정보를 제공, 조사에 착수 다수 위장 군 장성들이 숙청되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인모 노인이 북으로 갈 때(김 영삼 정부 초기) 누가, 그 노인에게 1급 기밀을 제공했을까 ? 관심거리 다.
여하튼, 한 유력한 군관학교 출신의 제보는 100프로 사실로 드러나고 있으며, 당시 미군의 개입 등 루머는 사실이 아니며 당시 계엄군들의 명령에 따라 광주 지역에 투입된 당시 특전사 중에서 환각제를 먹고 광주 시민을 살상한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특히 박 정희 대통령 시해 후, 혼란기를 이용 김 대중과 북한과의 내통으로 내란이 야기 된 것이 아닌지 하는 의심도 없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