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침투 당시 북한 특수요원들의 표시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둘러 * 광주 당시 상황을 카메라로 촬영, 현재까지 북한군에서 심리전 영화로 교육 중
1980년 5월 광주사태에 남파, 계엄군과 대치했던 당시 북한 군(61, 62 저격여단. 당시 61 저격여단 대대장은 이 봉원)이 광주 지역에서 "전투"한 실전경험을 현재 특수 군관학교 등에서 훈련 교육용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광주사태가 진정된 후 부터 북한 전역에선 {북한 특수부대에서 광주에서 전투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제보자 탈북자 아무개 씨는, {나는 1981년 군사학교에 입학한 후 부터 우리 특수부대가 광주 사태때 내려 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침투 북한군은 해상은 목포 항을 통해 광주로 집결했고, 낙하산을 이용 침투한 육상 침투조는 낙하산을 타고 내장산에 투하되었던 것으로 안다. 지금도 북한의 육상 침투조의 최종 투하지점은 내장산으로 알고 있다. 낙하산을 침투조는 무동력 기구를 타고 내려 오고, 해상 침투조는 핵동력 잠수함 300톤 급을 타고 온다. 기관사 등 20 여명이 승선하고 주로 공해를 거쳐 동해바다에 침투한다. 도착 지점은 강원도 지역이 아닌 부산, 포항, 남해, 삼천포, 제주도 남단 지역 이다. 나도 1985년 전후 6차례 남파 중 두 번은 동력 잠수함을 타고 왔었다...}고 밝히고,
{광주사태 당시 북한 침투조는 머리에 붉은 띠를 둘렀다. 총검으로 부녀자들을 죽인 군은 우리 북한 군이 아니고 거의가 남조선 공수부대 요원들이었다고 알고 있다. 그 때 환각제 등을 먹은 남조선 공수부대가 그런 짓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남침조에서 광주 사태 당시 찍은 사진이 현재 북한 군부대 등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을 보면 당시 남조선 특전사 등 공수부대원들의 얼굴이 다 나와 있다. 당시 탱크탈취는 남파 특수부대에서 했다. }
다시 그는 {당시 작전을 총지휘했던 책임자는 이 봉원 대대장이었고, 그는 김 일성 수령으로 부터 영웅칭호를 받고 태천군관학교 교장으로 승진했었다. 그가 당시 철수명령을 받고도 하루 늦게 철수 한 의혹 등 때문에 조사를 받고(이 인모 노인 북한에 돌아 온 후 남한에서 전향서 쓴 사람들이 많다고 폭로, 많은 위장 전향자들이 검거 소동이 일어났다고) 제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