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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UTH KOREA NEWS  
(일요일 아침에) 10년 전 북한 김 일성의 "사망" 정보 (월간 조선 8월호를 읽고) 7/25/2004
(일요일 아침에)

* 김 일성 사망요인은 사회개방 움직임 및 계모 김 성애의 공식석상 등장에 위기감 느껴 아버지 제거
* 주치의사 휴가는 이미 독살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했다는 근거
* 김 일성 우상화 신격화 차원에서 "외국 조문객 받지 않는다" 는 평양방송에서도 독살 단정


1994년 7월 7일 자정 이후, 그러니까 7월 8일 새벽 1시 부터 4시 사이에, 김 일성 수령이 죽었다. 묘향산에서. 심장마비.  그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미주통일신문 기자는 단번에 "타살 이야. 독살이야..." 단정하고 그 분석작업에 들어 갔다.

1. 며칠 후면 김 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데.....

2. 카터 전 미국 대통령도 만났는데...."이제 미국에 가서 낚시도 하고... 김 영삼 대통령도 만나고... 우리 인민들에게 이밥(쌀밥)에 고기 국을 먹이고 싶다...." 라고 노망 든 소리를 하긴 했으나... 이게 ?  결정타 ?

그래서, 10일 아침 미주통일신문 기자는 [김 일성 독살]로 단정하고 이 사실을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달려 가서 북한 팀에게 기자의 분석 자료를 직접 넘겼다. 그들은 "어떻게 알았어요 ? " 놀라고 있었다.

그 분석자료는 * 김 일성이가 사회 개방을 하려고 하자, 아들 김 정일이가 주도권 등에 위기감을 느끼고 아버지 김 일성을 죽였다 고 속보를 보여 주었다. (그 때 신문인쇄비가 없어서 팩스 용지에 타이핑, 미 주요 언론에 까지 팩스로 알렸다)

그 후 일주일 만에 미국 뉴욕 타임즈 등에서 보도했다. 김 일성 사망에 의문이 있다. 단순 심장마비가 아닌 것 같다고.

어쨌든, 김 일성은 6. 26 등 전쟁을 발생시킨 전범. 그가 당시 나이 82세 정도, 인생의 황혼에서 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김 정일이가 핵을 개발, 긴장시키자 미국의 공격이 가시화,  6. 25 때 피해를 입었던 공포증에서 혁명노선을 지양하고, 사회개방으로 키를 돌리자 사실상 북한 전권을 장악한 김 정일 팀에서 김 일성 수령의 정책 의지 변화에 동조할 수 없어 독약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 것.

당시, 본  기자가 독살로 속단한 배경은,

1. 김 일성 주치 의사가 수 십명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수 연구소)에서 수 십명의 김 일성 신체 부위 마다 담당 의사가 있다. 그런데, 이 날 묘향산에서 절명할 땐 주치의사가 없었다는 사실,

2. 묘향산에서 김 일성이가 쓰러 졌다는 연락을 받은 평양 의료 팀들이 헬기를 타고 긴급 출동을 했으나 비가 오는 등 악천후에서 헬기가 추락했다는 보도에서 계획적인 살해로 판단했던 것.   

3. 이 보다 더 의심했던 근거는 북한당국에서 "외국 조문객을 받지 않겠다"는 평양방송에서 였다. 여기서 김 일성의 단순 사망이 아님이 포착된 것이다. 즉, 위대한 수령 김 일성 동지의 서거(?)에, 북한당국이 조촐한 자기들만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불경죄 이며 북한 체제가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체제선전은 물론 김 일성 부자 우상화 신격화 세습화에 단련, 극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당국이 위대한 수령이 천수를 누리고 운명을 했는데도 외국 귀빈들을 초청하지도 않고 내부 처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당시 기자의 북한학 상식이었기 때문.

4. 사망원인이 심장마비 라는데서 의문이 가속화 되었다. 수령의 나이가 80 세를 넘겼고 체구 등을 볼 때 가능할 수 있으나 카터를 만나고... 김 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려는 순간에... 물론 심장마비 등으로 급사할 수 있으나 묘향산에 주치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에서 기자는 속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5. 특히 카터를 만날 때 김 일성은 파격적 이상인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던 것. 그것은 김 일성이가 당시 노망기가 발동했다고도 볼 수 있는 근거 다. 즉, 김 일성이가 카터를 만날 때 자신의 아내 김 성애를 대동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예를 보지 않더라도 김 일성은  중국,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와도 자신의 부인을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김 정일의 계모 김 성애가 공식석상에 나타 나자(김 정일은 계모의 외부 출입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었다) 김 정일이가 격분, 살해를 지시했던 것으로 판단 했던 것이며

김 성애의 등장은 곧 이복형제, "곁가지"들의 권력 상층부 진입 우려에 김 정일이가 수령 제거를 준비했던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월간 조선이 10년 추적 결과 보도에서 당시 김 일성의 경호 팀들이 김 일성 제거 당시 "판문점에서 남북정상 회담 준비 중이었다"는 데서도 결정적인 살해로 볼 수 있다는 것)

그 후, 탈북 귀순 안 명철 씨가 폭로한 사실에서 김 일성 살해사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 안 명철 씨는 * 김 일성 사망 시 주치 의사들은 모두 휴가 중이었고  * 당시 김 일성은 충격을 받고 심장이 파열 되었다(여기서 사망요인이 김 일성 별장에서 핵문제 등으로 김 정일이가 아버지로 부터 질책을 받자 화가 난 김 정일, 혹은 김 정일 팀에서 반항, 모종의 총기사고를 일으켰다고 월간 조선 등에서 밝혔으나 미주통일신문 경우는 묘향산에선 그 같은 언쟁 보다 치밀한 독약 투입으로 김 일성을 쓰러지게 했다고 추정한다. 묘향산에선 부자 간에 불화에 경호원 간에 총질이 있을 수 없었다고 보며, 또  김 정일이가 아버지를 제거한다는 결심이 섰는데 구태여 아버지 앞에서 언쟁 등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재론 하지만, 곁가지 이복형제들의 등장 우려에 아버지를 제거했던 것으로 최종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  수령 살해 직접 동기는 계모의 등장이 김 정일에게 중대한 살해동기가 된다. 이 같은 심리적 현상은 어떤 사람에게도 가능하다. 당시 김 일성 수령이 김 정일의 핵개발 등 NPT 탈퇴 등 강공이 역풍을 맞자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 한 김 일성 수령이 핵포기로 전환하며 설상가상으로 계모를 공개하자 김 정일은 이성을 잃었다고 미주통일신문은 판단)

* 의료진이 헬기를 타고 묘향산으로 갈 때 악천후로 추락했다는 정보 중, 본사는 묘향산 지역의 김 정일 팀에서 사격, 헬기가 추락한 것으로 관측.  어쨌든, 80세가 넘은 수령이 묘향산 별장으로 가는데 주치의사가 단 한명도 따라 붙지 않았다는 자체가 살해 작업에 의해 수령이 제거된 것으로 봐야 한다. 김 일성의 독살 장소는 주석궁이 아니고 묘향산 별장 집무실로 관측(경호 팀에서 조차 수령 경호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각본에 따른 살해로 단정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 장례식을 장엄하게 치루지 않으려고 했다는 사실과, 주석 직 폐지, 핵문제를 김 정일이가 주도 "핵을 포기 하지 않고 미국과의 협상전술로 북한체제 개방을 지연"한 김 정일의 대내외 정책 기조들을 상기할 때 당시 수령의 사망원인은 살해였다는 것이 미주통일신문의 주장. 사진은 1994년 7월 10일 자 보도 등 본사 신문자료 < 배 부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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