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개표 확인절차 없었다 “12시까지 끝내라”…얼렁뚱땅 개표 지난 12월 19일 대통령선거 개표과정에서 위법절차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측은 개표기에서 분류된 투표지에 대한 분류·심사를 거쳤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거치지 않은 선거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또 중앙선관위의 묵시적 압력으로 인해 분류된 투표지에 대한 2차 심사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 작년 대선 개표상황표(좌)와 지난 4월 24일 덕양갑 재.보궐선거 개표상황표(우) 모두, 분류된 투표지를 점검한 후 숫자를 기재해야 할 '분류된 투표지 수정'란(붉은색으로 표시된 부분)에 아무런 표시가 없어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중앙선관위는 지난 대선 전 개표절차에 대해 "투표함에서 꺼낸 투표지를 개표기에 넣어 자동으로 후보자별로 나눠지게 되면 일정량(선관위 직원들은 100매씩 밴딩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증언한바 있다. 그러나 전국에서 100매씩 밴딩한 선거구는 몇 군데 안 되며, 이로 인해 개표심사 집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본보 10월 20일 '대선 개표조작 가능했다' 참조>)을 꺼내 밴딩한 후 분류된 투표지와 미분류된 투표지에 대해 육안으로 심사·집계 한다고 홍보했다.
또 지난 대선 후 전자개표기의 불신과 개표 조작 의혹이 증폭되자 중앙선관위는 개표조작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펄쩍 뛰었다. 중앙선관위 공보과는 지난해 12월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개표사무원 육안으로 후보자별로 분류된 투표지에 타후보자의 무효표가 섞여 있지는 않았는지와 개표기가 분류·기재한 후보자별 득표수와 실제 투표지 매수가 일치하는지를 심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가 작성한 '개표기에 의한 개표실무 요령'에는 미분류된 투표지에 대한 분류·심사만 있을 뿐, 분류된 투표지에 대한 심사는 언급돼 있지 않아 홍보내용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개표기에 의한 개표실무 요령'에 따르면 집계·심사부의 경우 미분류된 투표지를 유효표와 무효표로 구분하고 유효표는 다시 후보자별로 구분하며 유효투표집계전과 무효투표집계전을 작성하고 책임사무원이 서명·날인하고 개표기가 후보자별로 분류한 투표지중 인식하지 못한 잘못 분류된 투표지가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도록 돼 있다.
또 실제로 지난 대선 개표과정에서 분류된 투표지에 대한 심사가 이뤄지지 않은 곳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서울 중랑·노원·관악, 충북 제천, 강원 영동지역에서 작성한 '개표상황표'를 확인한 결과, 분류된 투표지를 점검한 후 숫자를 기재해야 할 '분류된 투표지 수정'란이 증거사진에서 볼 수 있듯 모두 빈 공간으로 처리돼 있어 확인절차가 없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분류된 투표지 확인 수정란 모두 비어 있어
그러나 서울 중랑구 선관위 지도계 직원인 최양기씨는 "미분류된 투표지의 분류·심사 외에 분류된 표의 심사도 모두 했다"면서 "분류된 표도 2차 심사과정에서 손으로 모두 검사했으며, 개표상황표에도 모두 기록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거짓에 대한 조금의 양심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듯 "개표기를 총괄 책임지고 있어서 선거 15일 전부터 하루에 투표지 5만매를 매일같이 돌려 시험 운행했는데 단 한 표도 잘못된 표가 없었다"며 "사람이 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했다"면서 전자개표기의 위력을 과시하기까지 했다.
이와 관련, 모지역 선관위 관계자는 "중앙선관위가 지난 대선 후 3시간49분만에 개표작업을 끝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사실상 심사·집계 자체를 안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개표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영수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 직장협의회 회장은 "대선 전 회의가 있을 때면 상부에서 묵시적으로 '오후 12시까지 개표를 끝내라'는 분위기를 유도했다"면서 "속된말로 '알아서 기라'는 묵시적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 회장은 "오후 12시까지 개표 종료하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에서 힘없는 공무원들이 미분류 투표지를 보기도 빠듯한데 분류된 투표지까지 제대로 심사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선거인수가 2만에서 2만 5천명의 경우는 심사·집계를 제대로 했을 수 있으나 10만명 이상인 선거구에서는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한 회장은 "대선에서 사용된 개표기는 한계가 있는 기계였다"면서 "특이하게 기표된 투표지의 경우 무효표에 해당하는데 이번에 사용된 개표기는 이를 읽지 못해 모두 유효표로 분류됐다"고 밝힌 뒤 "대선 전에 이런 경우가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맘 푹 놓고 하라'고 해 신경을 안 썼으나 실제로 1월 27일 재검(성동구)에서 특이하게 기표된 표가 유효로 나온 게 12매나 발견돼 직원들이 질겁한 일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16대 총선에서 단 3표차로 당락이 결정된 일이 있었는데, 내년 총선에서 이 개표기를 사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건지는 눈에 뻔한 일"이라고 밝혔다.
10만명 이상 선거구…"개표 제대로 안됐다"
중앙선관위가 배포한 '개표기에 의한 개표실무 요령'에도 개표기가 특이하게 기표된 투표지를 미인식하거나 분류착오가 발생할 경우 분류표 확인(심사·집계)이 필요하다며 특정후보자의 기표란에 정상 기표되고 투표지이면에 기표한 것 2이상의 후보자에 기표했으나 선명도 차이가 있어 진하게 기표한 후보자의 유효표로 분류된 경우 등 그 항목을 7개로 분류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위의 경우에 해당하는 투표지는 그 발생빈도가 극히 희박하며, 후보자간 혼표는 절대 없으므로 당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한 회장은 "2월 20일 중앙선관위 선거과에서 1월 27일 재검에 대한 상황을 보고하도록 했고, 개표과정에서 혼표가 많이 있는 개표구선관위는 처벌한다고 했다"며 "투표지 심사를 제대로 하면 개표를 빨리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둘을 모두 요구하고 문제가 생기니까 처벌을 하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 회장의 말대로 실제 재검 개표과정에서 혼표가 많이 나온 포천과 창원선거구의 해당국장들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물어 타 지방으로 전출시켰다.
중앙선관위는 국민들에게 분류된 투표지도 개표사무원 육안으로 재검토한다며 전자개표기의 신뢰성을 주장하고도 선관위 직원들에게는 12시까지 작업을 마치라는 묵시적 압박을 가해 사실상 재검토를 막았다. 또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기자 상부지시대로 움직인 직원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으며, 몇몇 선거구의 직원들은 하지도 않은 재검토를 했다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이처럼 중앙선관위가 이중적인 행동을 취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대선 전 일정기간 동안 대선에서 전자개표기를 사용할 경우 자정 이전에 개표가 종료돼 밤샘개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자개표기의 위력을 과시했다.
중앙선관위가 지난해 8월 9일 배포한 '전산개표기 위력 돋보여-2시간 이내에 개표 마쳐'란 제하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중앙선관위는 8.8재·보궐선거에서 밤 9시를 전후해 개표를 신속, 정확하게 마칠 수 있었으며, 16대 대통령선거도 전산개표기를 전면도입해 사용하기로 함에 따라 적은인원으로 밤 12시 이전에 개표를 완료함에 따라 예산절약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중앙선관위는 보도자료에서 중요표시( )와 굵은 글씨로 "지방선거후 선거소청에 의한 재검표과정에서 전산개표기를 통한 개표부분에서는 한 표의 효력 착오분류도 없었음"이라고 강조했다.
대선 직전 시험개표…오류율 7-8%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맞춰 5월 22일 배포한 중앙선관위의 보도자료 '6.13지방선거에 처음 도입할 개표기 모의개표 실시'에서도 "지방선거의 경우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의 개표완료 시간은 오후 12시 정도에 종료될 것으로 예상되며,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지방선거에 사용할 개표기를 사용할 경우 오후 12시 이전에 개표가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 후 재검과정에서 무효에 해당하는 투표지가 유효투표지에서 발견된 경우가 전국에서 106매나 됐고 이중 79매가 서울에서 발견됐다.
또 최근 전자개표기 납품 비리 의혹과 관련, 최근 서울지검 특수1부에서 조사를 받은 업체 관계자는 10월 17일 "지난해 대선 직전까지 시험 개표에서 개표 오류율이 7~8%를 오르내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선관위 내에서 개표기를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으나 이를 무시한 결과, 전자개표기 납품 비리 의혹 등 문제점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편, 한영수 회장은 빌게이츠가 쓴 '미래로 가는 길'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전자개표기는 지금상황에서 아직 이르다"라는 구절을 설명하며, 정확성과 신속성, 경제성을 두루 갖추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며 '투표소개표'를 내년 총선의 투표방법으로 제안했다.
내년 총선에 대비해서라도 전자개표기의 검증과 함께 '빠른 개표'보다는 '정확한 개표'를 실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