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첫단추가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
모든 사람이 말하고 행동할 때에는 자신의 존재감을 인식하며 살아도 자신이 잉태할 당시의 태아 때나 출생할 당시의 영아 시절에는 자신과 이웃의 존재를 스스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초기 단계로써 창조주되신 하나님만이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해 말할 수 있는 알파요 처음이요 시작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태중 속 같은 하나님의 이런 보호막에서 성장하여야만 비로소 자신과 이웃의 존재를 인식하고 대면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이 생성되어 중간 단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런 자아가 생성된 후 자립으로 자유하게 되면, 그 때부터 자신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행동하여야 합니다.
사람이 자아를 지니고 자립하여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중간 단계의 삶에서는 또다시 끝 단계, 곧 미래(완성 단계)를 태동시켜야 합니다. 즉 자신을 광활한 우주 속에서 두려움 없이 존재케 한 하나님께 대하여 예수님처럼 감사와 보은의 삶을 살아 충효로운 자식이 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도리어 잡아 먹으려고 하는 사단처럼 살모사(殺母蛇)와 같은 대적자가 될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하여야 합니다. 충효로운 자식으로 완성되면 영생하신 하나님께 자녀로서 친구로서 반려자로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지만, 반역하는 원수로 완성되면 만물의 찌꺼기와 폐기물이 되어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나 만물이 중간 단계를 제외한 처음 단계와 끝 단계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계획하고 결정(심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알파와 오메가로 자처하였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요한계시록 21:5~8)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중간 단계가 가장 중요한 고비입니다. 이 때가 바로 인생의 청장년 시절과 같아서 사단 같은 온갖 악한 자들을 만나 세속에 빠져 자신의 부모된 하나님에게 자신과 만물이 탄생하여 자아를 깨달을 수 없었던 태아적 시점의 일들을 지금 당장 자신들의 육적인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확인시켜 주어야만 비로소 창조주 하나님을 섬겨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겠다고 반항합니다. 마치 먼 타국에 계신 고명한 아버지께 세상 초등학문 지식을 터득한 잘난(?) 자식이 "당신이 나를 만들어 낳았다는 진실을 학문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인식시켜 주어야만 아버지로 인정해 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초등학문 지식은 하나님 보시기엔 한낱 지렁이 수준의 지식입니다. 즉 육감으로 접할 수 있는 것들만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에게 이런 지식을 근거로 해 반항하는 불효불충한 인간들이 대부분 그들 부모님 계통의 윗분들에게도 이와 같은 성향의 지식으로 반격을 가합니다. 즉 황금 만능주의와 섹스 쾌락 시대와 좌경화 사상이 만연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자신들이 어떻게 부모님 같은 윗분들의 코리타분한 구습에만 매여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대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든 부모님 계통의 윗분들이 이런 불효불충한 자식들의 무모한 악다구니에 기가 막혀 더는 그들을 자식으로서 사랑해 줄 정념이 사라지게 되고 원한의 골만 점점 더 깊어 갑니다.
이와 같은 악인들이 만연하게 되자 그들로부터 탄생된 철학자(사상가)들이 난무하게 되었고 또 그런 철학자들이 지렁이 같은 육신의 육감으로 접할 수 있는 것들만 참된 실존과 참된 현실로 취급하기 때문에 박테리아가 진화하여 원숭이가 되었고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간이 되었다라는 지렁이 수준의 온갖 가설들을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신뢰하게 되었으며 또 육신의 죽음 이후에 존재한다는 영혼의 세계 같은 것은 한낱 신화로 단정해 무시하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지으실 당시의 처음 상황과 또 인간 육신의 죽음 이후에 부닥칠 심판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육적인 지식으로는 확인 불가능한 일들이기 때문에 아예 무시해 버립니다.
앞서도 말하였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삶은 3단계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적 감각으로 확인 가능한 단계는 오직 인간 육신이 의식을 갖고 생존할 수 있는 중간 단계 뿐입니다. 처음 단계와 끝 단계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주관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중간 단계만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처음이 되시고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간 단계의 삶도 처음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야만 가장 안전할 수 있는 데, 사람들이 자신들의 출생지가 되시고 돌아갈 고향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살지 않고 다만 중간 단계인 육신의 생존 때가 삶의 전부로 취급하고 있으니 이런 삶이 바로 머리(시작)도 없고 발(끝)도 없는 지렁이 같은 삶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향해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이사야 41:14) 하시며 꾸짖었던 것은, 중간에 처한 시간대만 현실로 존중해 살아가고, 자신들의 처음(조상)이 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열조들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약속에 대해 별무관심으로 취급하고 살아가게 된 것에 대한 질책이었습니다. 중간 시간대에만 충실하는 지렁이들은 처음(머리)되는 탄생의 시기와 또 끝(발)이 되는 결과를 접해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시합니다. 모든 인간들이 출생할 당시의 상황을 스스로의 지식과 능력으로 규명(접)할 수 없듯, 자신들의 미래 또한 스스로의 능력으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자기들을 낳고 키우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계획하고 결정할 사항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자신들의 처음과 나중을 스스로의 지식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규명하고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요한계시록 22:13) 선언하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의 지식과 능력으로 이것들을 규명하고 결론지어 보겠다고 하는 것 자체부터가 교만(무지)의 길로 들어선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우주를 뒤적여 가며 자신들의 출생의 근거와 미래에 돌아갈 처소를 찾더라도 그것들은 모두다 진실과 상관이 없는 거짓에 불과합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그 두 가지 진실을 규정하고 실행할 자격과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마치 물건을 제작한 자만이 그 물건의 목적과 사용법을 말할 자격과 능력이 있고 그것을 만들지 않는 자들은 결코 그 물건의 목적과 사용법을 말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항상 그의 교훈을 중심 삼아 살아가기 때문에 그들의 미래는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처음과 나중이시며, 남편은 아내의 처음과 나중이며, 부모님은 자식들의 처음과 나중이며, 국법은 공직자들의 처음과 나중이며, 사장님은 직원들의 처음과 나중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복되게 아름답게 살아가려면 삶의 첫단추가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적으로 정상적이어야 하며, 여자가 남자를 만나 의좋게 백년해로하려면 남편과의 첫단추가 정상적이어야 하며, 자식들이 모든 일에 형통하려면 자신들의 첫단추가 되시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어야 하며, 나라의 공직자들이 승승장구하려면 자신들의 첫단추가 되는 국법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어야 하며, 직원이 제대로 보수를 받으려면 그 회사의 머리가 되는 사장님과의 첫단추가 정상적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좌경화 정치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청장년층들을 보십시오. 그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첫단추가 되시는 하나님과 부모님과 남편과 국법과 사장님과의 관계는 잘못 되어도 별무관심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 속에서 만나고 대하는 저잡스러운 친구들과 컴퓨터, 테레비 화면에 등장하는 인기 연예인들과 포로노 배우들만이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할 절대자로 취급해 주시할 뿐, 자신들의 삶의 첫단추가 되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부모님의 말씀이나 국법 준수행위나 사장님의 경영 방침에 대해서는 별무관심인 채 다만 또레 친구들로부터 받는 인기와 칭찬과 또 유명 연예인들의 땀 구멍까지 헤아리는 짓들과 또 컴퓨터.테레비 화면에 뜨는 포르노물 감상과 전교조들의 좌경화 이념과 직장 노조의 대모질에만 온 몸과 정성을 쏟아붓는 지렁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처음과 끝이 되시는 분들과의 첫단추가 정상적으로 끼워져 있어야만 비로소 중간이나 끝 지점도 정상적으로 단장됩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첫단추를 의식하고 살아가게 되면 그 중간이 되는 현실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그 끝은 더욱 아름답게 빛납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이사야 52:7) 하심 같이, 사람이 처음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첫단추가 정상적이면 그 나머지 부모님과의 관계로부터 시작해 각 분야의 처음이 되시고 나중이 되시는 분들과의 관계(단추)도 정상적으로 유지됩니다. 삼가 하나님과의 첫단추가 최우선적으로 정상적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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