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죄악하는 자만이 출애굽할 수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으며, 또 로마는 유대인들을 지배하였어도 세계의 경찰국 노릇을 할 수 있는 공의는 없었습니다. 그런 국제정세 속에 태어나신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메시아로 그려보면서 모세와 같은 이적기사로 은근히 이스라엘 민족을 또다시 세계의 경찰국으로 부강하게 만들 줄 알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기대를 예수님이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모세보다 더 완벽한 이적기사로 자유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백성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보고 메시아라는 명칭에 훨씬 못미치는 한낱 선지자나 랍비 정도로 폄훼하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최강대국 애굽왕 바로와 그 군대를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이스라엘 민족들을 출애굽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들이 가나안 복지를 차지한 후 물질적으로 풍요하게 되자 곧바로 하나님의 교훈을 버리고 가나안 원주민들보다 더 우상을 섬기고 각종 부도덕한 범죄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들의 육신은 비록 출애굽하였으나, 그 육신의 주인되는 심령은 출애굽하기 전보다 더욱 간악한 독재자 사단의 죄악 사상에 묶이었습니다. 애굽왕 바로에게 짓밟혔을 때에는 그래도 그들의 심령은 지옥 불에 들어갈만큼 부패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가나안 복지에서 먹고 마시고 배부르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모든 방면으로부터 짓밟히고 고통당할 수 있는 주된 원인인 마귀의 죄악된 습성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또다시 로마제국을 하나님의 권능으로 굴복시켜 이스라엘 민족에게 열국을 호령할 수 있는 강력한 주권국가로 세워 주실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자기의 자녀되는 사람들의 육신보다 심령을 더욱 영적으로 거룩하게 하고 강건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육적 고통과 고난을 촉매제로 사용하여 심령의 거룩함과 경건함을 갖추도록 하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메시아로 오실 분이 모세와 같은 육적 권세와 풍요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고, 다만 아골 골짜기 같은 험악한 상황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해 지키는 영력으로 심령의 죄악에서 벗어나는 구원이었습니다.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세아2:15) 라고 예언하신 뜻은, 영적인 심령의 청결함과 거룩함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육적인 풍요를 덤으로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지배를 받아 각종 우상숭배와 죄악과 음란방탕으로 더럽혀진 자들은, 하나님께서 예외 없이 그들을 환란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아골 골짜기를 통과케 하여 범죄의 요소들을 소멸시킵니다. 사람은 아골 골짜기 같은 환란과 고통과 유혹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수해 지켜야만 비로서 육적인 풍요를 주어도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인격이 형성됩니다.
사람이 육적 재앙(폭군, 가난, 질병 등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바로 영적 재앙(죄악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미 죄악의 심령으로 심히 완악하고 부패타락하여 짐승화된 이스라엘 민족들은 예수님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눈앞에 부닥친 육적 재앙, 곧 로마 정권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예수님께 모세의 이적기사와 같은 능력들만 바라고 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르친 산상수훈 같은 것은 참으로 이 세상 모든 종류의 폭압 독재자들과 재앙들을 물리치고 깨뜨릴 수 있는, 즉 모세의 권능보다 더 강력하고도 근원적인 능력들입니다.
모세의 구원은 고기가 먹고 싶은 사람에게 고기를 잡아다 주는 수준이지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구원은 고기가 먹고 싶으면 친히 고기를 불러다 잡는 능력입니다.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데살로니가후서3:17) 하심 같이,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대표적인 표적이 홍해를 가르는 이적기사지만, 예수님이 하나님께 받은 대표적인 표적은 홍해를 가르는 능력보다 더욱 강력하고, 부활의 의미보다 더 큰 이적기사인 죄악을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고난 당할 때 간구하는 육적인 표적(이적기사)보다, 죄악을 이기고 정복하여 의를 행할 수 있는 영적인 표적(교훈)이 더 크고 근원적인 표적(이적기사)입니다.
모세는 죄를 범하지 않고 피해 다니는 율법을 가르쳐 주었지만, 예수님은 죄를 이길 수 있는 지혜와 능력(복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육적 폭압독재자들만 굴복시킬 수 있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육적 폭압독재자의 주범, 곧 영적 폭압독재자 마귀를 이기고 추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분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큽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육적 막가파 식자들은 미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행동하고 이북의 김정일이 어떻게 대응한다는 하찮은 소문에는 눈에 불을 켜고 살피지만... 지금의 남북한과 세계의 열강국들을 좌우하고 계시는 실세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지시하고 있는지에 대한 교훈(표적)에 대해서는 짐승처럼 무식합니다.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의 뜻과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믿고 의지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주목하고 있는 세력들로부터 항상 동문서답 같은 대화를 주고 받게 하여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하십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인간들이 쌓아 올리려고 하는 바벨탑에 대해 예수님이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각기 지니고 있는 죽음(죄악)의 지식들로만 유식한 체할 뿐,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실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이나 또 귀담아 들을 수 있는 말 한 마디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된 관심사인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위기보다도, 자신들의 죄악된 사고방식으로 이 난국을 해결해 보고자 하는 교만이 더 큰 위기입니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영안으로도 그들의 미련함이 이렇게 비치는데, 하물며 불꽃 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께는 얼마나 더 추악하게 보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의 추악한 행동 그대로 갚으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인생들이 선한 일을 하려다 실수하는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마냥 용서하시지만, 이런 무한대의 용서만 믿고 두려움 없이 범죄를 반복하는 잔머리꾼 악인들에게는 결코 이용당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잔머리꾼 악인들에게 이용당하여 무한대로 용서해 줄 또 다른 하나님이나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있을 줄 알고 마냥 죄악된 삶을 반복하는 악인들에게는 어떠한 형태의 출애굽(환란과 고통에서의 해방)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세가 행한 이적기사는 출애굽으로 출죄악하려다 실패한 이적기사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펼친 이적기사 곧 지혜의 말씀들은 출죄악으로 출애굽시키는 완벽한 표적(이적기사)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 제일의 수단방법으로 재인식하게 하는 이와 같은 표적(이적기사)들을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입니다. 헛되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이 시대의 지혜의 말씀들에 대해 귀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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