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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에서 지나가는 선생님을 본 학생들이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하고 아는 체를 하면 평소에 제자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일 것이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준다는 것은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그런데 만일 선생님이 학교 복도를 지나가는데 학생들이 두 줄로 길을 터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면 그 것은 좋아하는 것을 넘어 존경한다는 표시일 것이다.
그 삶과 인격이 너무 고상하고 아름다울 때 우리는 좋아한다는 표현보다는 존경한다는 표현을 해야 할 것이다. 남들이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편해서 가까이 하고 싶은 이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존경받고 추앙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삶이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삶은 내가 남들에게 좋아하고 가까이할만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존경받고 추앙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내가 먼저 사람을 가까이 해 주는 것, 내가 먼저 사람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 존경받는 사람보다 존경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된 다는 것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요, 에덴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기를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계명을 주시고 지키게 하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성육신하게 하셔서 말씀 하셨다. 그러기에 계명은 짐이 아니라 생명이다.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풍성한 삶을 위해서이다.
무엇이 인간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게 하는가? 그 첫 번째 원리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말씀한다.
인간의 삶의 근본 원리를 공경하는 즉 존경하는 삶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공경은 그 삶이 아름다운가? 아닌가, 행복한가, 아닌가? 에 대한 해답이다. 그 삶 가운데 공경이 가득한 사람은 아름답다. 남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가슴은 행복하다.
공경으로 채워진 가정과 공동체는 하나님이 그리시던 에덴의 그림이다. 그래서 아름답고 행복하다. 반대로 그 삶 가운데 경멸로 가득 채워진 삶은 아름답지 못하다. 남을 혐오하고, 비난하는 마음, 반항으로 가득 찬 삶은 절대로 아름답지 않다. 행복하지 않다.
사회도 공동체도 공경하고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이끌어 가는 근간이다. 공경이란 단어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어두운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현대는 반항이 우상이 되어있다. 청소년들의 반항이 우상이 되고 문화가 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공부시간에 아예 책을 꺼내지도 않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앞으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선생님의 충고를 들은 학생이 패거리들과 모여서 “우리 이제부터 담배를 앞으로 피우지 말고 옆으로 피우자”라고 했다고 한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공경은 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선택이 아니라 계명이다. 하나님은 이유를 말씀하신다. 공경은 자연적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
조건이 아닌 그 삶이여야하고 그래서 공경 못하면 삶이 엉망이요 그 삶은 죽은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경은 선택이 아닌 삶으로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도저히 공경할 수 없는 상황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둔 자녀가 있을 수 있다. 그 처지와 상황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만, 당연하지만 그래서 불순종하고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그것이 죄가 가져다준 죄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연함을 따를 수 없는 것이다. 왜? - 그것이 죄의 질서이기 때문에, 죄의 질서는 사망이기 때문에…. 그래서 부모로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존경받을 만한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재산보다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값진 재산은 존경의 삶을 울려주는 것이다. 그게 아닐 때 그 자녀의 삶에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갈등과 아픔이 된다. 공경이 계명인 줄 아는데 공경 할 수 없는 무거운 죄의 짐과 갈등이 된다.
공경하고 존경하는 삶은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에덴의 질서 즉 창조의 질서는 권위였다. 그러나 죄는 그것을 깨지게 했다. 그러나 공경하는 삶은 창조질서에 순응하는 삶이다. 죄는 불순종의 영을 가져왔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불순종의 죄성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래서 공경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존경하고 공경하는 마음은 죄 성을 이기고 싸워가는 능력이다. 공경 은 약자의 비굴함이 아니다. 힘없는 자의 굴복이 아니다.
죄 아래 사는 인간의 자아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다. 그러한 자아를 이긴 힘에서 나온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이 공경과 존경하는 마음이다.
죄를 이기고, 자아를 이기고 하나님의 형상이 발동될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한마디로 공경은 믿음이요 능력이다.하나님의 계명이 살아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 힘 있는 교회, 힘 있는 성도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어떻게 공경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십자가’가 답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 하늘에 아버지를 공경하신 모본 , 마지막 기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 하나이다.”
십자가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한자의 고백! 이것이 답이고 이름다운 삶이다.
반종원 목사 / 수원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