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는 바와 같이 김일성은 휴전과 더불어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적화통일에 장애가 되는 미국과 UN의 개입을 막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절대 필요했고 (윤여길 기고문 ‘북한의 핵미사일과 남침용 땅굴 그리고 그들의 통일전략’을 참조) 남한을 파괴하지 않고 일거에 군사적으로 점령하여 강요된 합의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땅굴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이 두 가지 전략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김일성은 모든 희생을 감수했고 또한 성공했다.
중국 측 정보에 의하면 핵개발을 위해 김일성은 휴전 이후 곧 바로 1955년에 원자 및 핵물리 연구소를 평양 근처에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기타 정보를 종합해보면 1960년대부터는 소련의 드브나 핵 연구소 등에 다수의 공학자들을 파견하면서 핵물리 및 핵 공학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핵탄두 제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연구, 물질 제작 및 부품 구입을 위해 김일성은 막대한 예산을 지출해가며 동분서주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초에는 소련으로부터 시험용 원자로(5MW 급)를 원조 받아 영변지역에 설치 가동하기 시작 했다. 이는 핵탄두용 플루토늄을 생산하기에 가장 알 맞는 시험용 흑연 爐(로)였다.
또한 원자로에서 우라늄을 태우고 남은 플루토늄의 재처리는 느슨한 과거 소련 및 중국 등의 핵 기술 유출방지 관리와 북한 자체의 연구 노력 등으로 시간과 자금만 있으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을 것이며 열악한 안전관리 등의 문제로 다소의 희생을 무릅쓰기만 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면서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미 탈북자 김용씨 등의 진술을 통해 제14 정치범 수용소 근처 주민들의 신생아들이 기형아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는 그 근처에 플루토늄 재처리와 관련된 시설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