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마음에 들이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이스라엘 장로 두어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대로 응답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인하여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의 마음에 먹은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니라"(에스겔 14:1~5) 하심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육적 형상의 우상들에게만 대체적으로 절하지 않았을 뿐이지, 마음 속에 품은 죄악으로 새겨 꾸며 만든 하나님관은 천태만상이었습니다.
죄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지혜가 더욱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모든 피조물들의 생각과 마음들이며, 악은 그러한 생각과 마음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피조물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단죄해 버릴(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짓이 피조물들의 정당한 생각과 마음으로 고착화 시키려고 하는 생각과 마음들입니다. 다시 말해 죄는, 하나님의 공법을 거역한 후 받아야 할 형벌과 당하여야 할 수치가 두려워 죄짓지 않았다고 숨기는 거짓이며, 악은 지은 죄가 만연해 보편화 되었는 데도 굳이 그런 죄를 나쁜 짓으로 단죄해 형벌과 수치심을 주는 것은 반사회적인 모순 행위이다 하여 그런 범법 행위 자체를 당연한 사회 상식으로 인정하는 짓입니다.
이와 같은 악이 세상에 편만해 져 인류는 노아 홍수로 멸망 당하였고 노아의 여덟 식구로 다시 번성한 후에도 또다시 노아 홍수 이전의 상태로 짐승화 되어 가는 것을 보시고 창조주 하나님이 천하만민들 중에 가장 먼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나타내 보이시고 그를 지명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우상을 제조해 섬기는 일을 일반 상식으로 취급하고 있는 악한 조상들의 집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 나설 때에는 추호라도 마음 속의 사심(私心), 곧 우상을 품지 않았습니다. 이런 믿음이 그의 자손들로 하여금 정글 속 오지(奧地)보다 더 험악한 사막 지대와 약육강식만이 유일한 법으로 통하는 맹수와 독충 같은 족속들이 들끓는 광야 길을 헤쳐 가나안 복지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신의 생존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고향과 친인척들을 버리고 떠나 뜬 구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고 따라 나설 때에는 조그만한 마음의 우상도 남겨 둘 수 없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아브라함이 믿을 수 있도록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복지까지 가게 될 자기 후손들의 안전한 경로와 또 흉악한 족속들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확고부동한 육적 안전 장치, 곧 눈으로 볼 수 있는 부와 권세와 무력 같은 우상들을 하나님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런 우상들을 먼저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더라면 결코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한 자식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브리서 11:8) 하심 같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에는 에덴동산의 아담과는 정반대의 마음이었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는 생존권과 지위가 확보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뜬 구름 같은 사단의 말을 믿고 따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곧 낙원을 잃게 되었으나, 아브라함은 반대로 사단(우상숭배)에 의해 육적 생존권이 확보된 고향과 친인척들의 보호막에서 떠나 뜬 구름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이 두 가지 양극화 상황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당한 인간들의 실낙원의 상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만 에덴동산 같은 가나안 복지와 천국을 회복(치료)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육적인 생존권과 지위가 확보된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의 땅을 얻기 위해 악한 습성이 고착화 되어 악을 악으로 취급지 않는 고향 같고 친인척들 같은 환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아버지가 지정하신 가나안 복지(땅에서의 평화)와 천국(부활의 승리)에 들어가려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도 반드시 아브라함의 마음과 같이 우상(눈에 보이는 부와 권세와 무력)을 구하지 말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나아가야 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우상, 곧 육적 증거를 확보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 있다고 하는 마음 속에 모든 우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야만 메마른 사막과 들짐승 같은 인간들이 출몰하는 광야 같은 이 악한 세상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 행위를 금지시킨 주된 목적은, 마음 속에 감춰 둔 우상숭배 행위를 근절시키기 위함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눈에 보이는 사단보다 자기 육신의 생각 속에 숨어 있는 사단의 습성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간교한 사단을 당장 제거하여도 인간의 육신 속에 숨어 있는 사단의 습성이 잔존해 있는 한 결단코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가 밀접한 관계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사단을 그대로 활동하게 하여 사람들의 육신 속에 숨어 있는 사단의 습성들을 송두리째 들어나도록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사단이 범죄를 저지르고도 여전히 하나님의 궁정에 출입하며 끝까지 사람들을 유혹하도록 공인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 후 사단은 하늘에서 쫓겨 나 땅에 내려와 최후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천하만민이 눈에 보이는 육적 우상보다 자기 마음 속에 묻어 둔 죄악과 또 그 죄악된 마음으로 제 각기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천태만상의 하나님관이 진짜 우상입니다. 일례를 들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 엘리사에게 예를 갖추고 나아 갔으나, 엘리사는 초가 집 같은 곳에 거하면서도 당대 강대국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한낱 밥얻어 먹으려고 찾아온 거지 취급하여 집에 들이지도 않고 다만 사환을 시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담그라고 전언하였습니다. 이에 발끈한 나아만 장군만의 개별적인 우상, 곧 하나님관을 보십시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열왕기하 5:11~12) 하심 같이, 나아만이 개별적으로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우상의 하나님이 이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대적해 분노하여 자신의 불치병 문둥병을 치료받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습니다. 나아만으로 하여금 문둥병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주적은 세상 만물 그 어디에도 없고 오직 나아만의 마음 속에서 그려 새겨 꾸며 만든 거짓된 우상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주된 원수는 오직 자기 육신의 생각에서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우상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백성들은 이러한 우상숭배 행위로부터 벗어나 구원받게 하여야만 비로소 그들이 직면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아만이 자기 육신의 생각이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우상의 하나님으로서는 도저히 문둥병을 치료할 수 없으나, 살아계신 생명의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런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도 나아만의 종들이 그것을 발견하여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열왕기하 5:13)라고 충간하자 나아만도 그들의 말이 일리가 있음을 깨닫고 순종하여 마침내 문둥병으로부터 구원받았습니다.
나아만이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우상의 하나님을 마음 속에 품은 상태로는 아무리 선지자께 나아가도 실제 하나님을 만나뵐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실제 하나님은 그 때 자기에게 나아오는 나아만을 이렇게 바라보고 계셨으리라 믿습니다. "네가 나를 한낱 질병이나 치료하는 잡신 정도로 취급하여 내 종 선지자에게 나아와 칙사 대접 받으며 문둥병을 고치려 하느냐? 너 같은 자는 아직도 내 종 선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나 줏어 먹을 개들에 불과하다." 하시면서 엘리사로 하여금 꼼짝하지 못하도록 하고 나아만을 자기 집 하인 대하듯 명하였을 때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의 하인으로 자처해 순종하게 되면, 비로소 문둥병을 고침받도록 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와 같은 엘리사의 기품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예수님이 무슨 신의 아들로 당선되기 위해 출마한 입후보자로 취급해 사람들 앞에 비굴하게 굽실거리며 선거 유세를 하고 있습니다. 즉 석가보다 더 대자대비하고 마호맷보다 권력이 강하고 공자보다 윤리적이라는 것만 과시할 뿐, 죽음마저 이기고 부활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을 실행해 자랑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그들이 예수님을 신학적으로 그려 새겨 꾸며 만들었는지 그들의 가르침 속에서 하늘의 평안과 기쁨과 위엄과 활력은 찾아볼 수 없고, 겉으로는 선거 유세자들과 같이 가증스런 미소를 띄우나 내면에는 김정일 같은 포악한 독재 사상이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신도들을 마치 하나님의 종 모세를 거역하는 자들로 취급해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모세의 만분의 일만큼이나 하나님께 충성하였더라면 하나님도 그들의 말을 지지하여 그들의 대적자를 징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와 같은 자들을 거짓 선지자로 취급하는 까닭은, 그들이 사람들을 특별히 속이고자 하는 의도 때문만이 아니라, 인류의 모든 사람들을 각자가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우상의 하나님, 곧 죄악으로부터 구원하려 오신 예수님의 뜻을 곡해해 선전하고, 예수님을 다만 가난과 질병과 귀신과 재앙과 전쟁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육적 구세주로만 착각해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육적 구원은 구약 시대 때에 출애굽하는 모세의 구원일 뿐, 신약에서 펼쳐질 인간의 근본적인 구원은 심령의 구원으로써 인간의 참된 원수와 주적은 오직 나아만 장군의 마음 속에 있었던 것과 같은 우상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아무리 모세와 같은 출애굽의 구원으로 그들을 모든 재앙과 대적들로부터 무수히 구원해 주어도 그들은 여전히 마음 속에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우상의 하나님으로 하여금 기어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가 그려 새겨 꾸며 만든 우상의 예수님(하나님)을 섬기지 말고 먼저 그 우상을 깨뜨리고 아브라함처럼, 나아만처럼 오직 하나님이 지시하는 말씀에 대해서는 육신의 생각이 추정하는 댓글(우상)을 앞 세우지 말고 무조건 순종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인간의 강력한 생명력(통치력)으로 작용하여 자신의 모든 고통과 원수와 대적들로부터 여러분들을 제대로 구원하십니다. 할렐루야!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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